조선은 기록의 나라다. 어느 나라와 견줘도 둘째라면 서러울 기록의 왕국이었다. 국무회의 기록이라 할 <비변사 등록>, 죄인을 다스렸던 의금부 기록인 <의금부 등록>, 외교 일지인 <전객사 일기>, 조선 왕의 일기인 <일성록>까지. 그 철저했던 기록정신의 대표주자는 단연 <조선왕조실록>이다. 그리고 <승정원일기>다.
<승정원일기>는 왕명 출납 관청 승정원에서 기록한 것이다. 왕의 비서실 격으로 왕의 명령을 들이고 내보내는 일을 처리했던 승정원의 기록담당들은 그 렌즈에 포착된 나날의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겠다는 ‘기록 본능’으로 손에 땀띠가 나도록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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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승정원일기>는 <조선왕조실록>(실록)처럼 조선 500여년을 기록했지만, 아쉽게도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으로 그전 기록은 소실됐다. 현존하는 건 인조 때부터 1910년까지 288년간의 기록인데, <실록>의 다섯 배에 이르는 분량을 자랑한다. 책으로는 3245책, 글자로는 2억4250만자. 중국의 가장 방대한 기록물이라는 <명실록>(2964책·1600만자)을 비웃을 만하다. 이 방대함이야말로 한자의 장벽과 함께 <승정원일기>를 장막에 가려놓았던 원인이기도 하다.
지은이들은 말한다. 지금까지 조선시대 역사기록물의 대표선수가 <실록>이었다면, 앞으로는 <승정원일기>가 되어야 한다고. 역사 연구와 스토리텔링.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.
우선, 그 기록 시점의 현재성이다. <승정원일기>는 왕에게 보고되는 문서와 사건들, 왕이 처리한 국정 전반에 이르기까지 나날의 사건이 현재진행형으로 기록되었다. <실록>이 사건이 있은 뒤에 나중에 그 과정을 재구성한 기록인 반면, <승정원일기>는 현장에서 바로바로 시간대에 따라 필기한 속기록인 것이다. 예컨대 영조 4년 이인좌의 난을 진압했던 이광좌 등 소론세력은 나중에 역적으로 몰린 탓에 <실록>에선 난 진압 당시의 공로가 모두 삭제됐다. 대신 영조가 처음부터 침착하게 진압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돼 있다. <승정원일기>의 기록은 사뭇 다르다고 한다. 이광좌의 사건처리 솜씨가 가감 없이 드러나고 영조가 초기 실상을 파악하지 못해 방심하다 청주가 함락되고 나서야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. <실록>은 작성 시점에 권력 장악 세력의 입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데 반해 <승정원일기>는 연구자들에게 사건 당시의 객관적 정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료인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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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책에는 신참이 들어왔을 때 관리들이 벌였던 호된 신고식 행각, 불구가 된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신부댁에 다른 아들을 보여주어 ‘사기’ 혼인을 하려 했던 홍주목사 박지 탄핵사건 등 승정원의 렌즈에 잡힌 조선의 사건 사고들이 흥미롭게 소개된다
<실록>의 한글번역 전산화의 성과는 <실록>을 원천 삼은 문화 콘텐츠의 만개로 나타나고 있다. <승정원일기>의 스토리텔링은 아직 미래형이다. 국사편찬위에서 하고 있는 원문 전산화 작업은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고, 고전번역원의 한글 번역작업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. 그 작업들이 열매를 맺는다면 <승정원일기>는 한자의 장벽을 넘어 일반 대중들에게 그 화려한 전모를 드러내게 되리라.
허미경 기자 carmen@hani.co.kr
*기사 링크 www.hani.co.kr/arti/culture/book/391542.html